유럽을 강타한 무더위가 한국에 상륙할 즈음 읽었습니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현실의 더위와 소설 속 여름이 자꾸만 겹쳤습니다. 시골 산골에서 들려오는 매미 소리와 빗소리, 눅눅한 공기와 좀처럼 식지 않는 한낮의 열기가 문장 밖으로 밀려 나오는 듯했습니다.

박연선의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출처: 교보문고 도서 정보
그중에서도 홍간난 여사의 대사는 그야말로 음성지원이 됩니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한마디씩 내뱉을 때마다 목소리와 표정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종이 위 인물인데도 오래 알고 지낸 동네 할머니처럼 생생합니다. 홍간난 여사와 손녀 강무순이 티격태격하는 장면에서는 절로 웃음이 납니다.
홍간난 여사와 강무순은 홈즈와 왓슨 못지않은 탐정 콤비입니다. 노련한 명탐정과 충실한 조수로 역할이 깔끔하게 나뉘지는 않습니다. 한쪽이 엉뚱한 방향으로 뛰어가면 다른 쪽이 붙잡고, 서로 못마땅해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기막히게 손발이 맞습니다. 이 불균형한 호흡 덕분에 두 사람이 더욱 매력적입니다.
강무순을 보고 있으면 ‘한국판 에놀라 홈즈’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다만 서양 탐정 이야기를 한국 시골에 구겨넣듯 옮겨 놓은 어색함은 없습니다. 우리 근현대사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정말 있었을 법한 사건과 인물들이 이야기의 뿌리를 단단히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투리부터 마을의 풍경과 사람들의 생활상까지, 작가가 얼마나 치밀하게 조사했을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 곳곳에 있습니다. 배경은 사건을 담아 두는 무대에 머물지 않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기억하고 모른 척하며, 때로는 입을 다무는 방식까지도 추리의 일부가 됩니다. 그래서 오래된 실종 사건을 좇는 일은 곧 마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 됩니다.
서정적인 시골 분위기에 속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 소설은 철저한 추리소설입니다. 어쩌다 시골에 머물게 된 서울 처녀의 좌충우돌 동네 탐험기라고 마음을 놓는 순간, 작가가 태연하게 흩뿌려 둔 단서를 놓치게 됩니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간 말과 장면이 뒤늦게 제자리로 돌아오는 맛이 좋습니다.
가능하면 아무 정보 없이 읽기를 권합니다. 매미 소리와 사투리에 마음을 빼앗기되, 수상한 흔적은 눈여겨보시길 바랍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장면이 분명 생길 테니까요.
읽는 내내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영화로 나오지 않을까요?
습기 찬 여름 풍경과 어둑한 산길, 마을 사람들의 묘한 침묵은 화면에 옮겨 놓기만 해도 근사할 것 같습니다. “살인의 추억”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이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주면 좋겠다는 바람도 품어 봅니다. 무엇보다 홍간난 여사를 제대로 연기한 배우라면 그해 연기상을 휩쓸지 않을까요.
찾아보니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마켓에서 폴룩스 픽쳐스와 영화 및 영상화 제작판권 계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아직 실제 영화로 이어지지는 않은 듯합니다. 언젠가 홍간난 여사가 스크린에서 걸어 나오는 날을 기다려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