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덤함은 죄가 되는가 —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우리는 타인의 삶을 자신의 잣대로 함부로 재단하는 야만적인 태도에서 벗어났을까요?

By 전경원

『이방인』은 한 인간의 무덤덤함이 일련의 불운 속에서 사회의 잣대로 어떻게 해석되고 평가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소설의 배경으로 나오는 알제리는 아프리카 북부에 자리 잡은 거대한 나라지만 뫼르소의 동선은 사하라 사막 위쪽의 지중해에 면한 북쪽 해안에 머뭅니다. 수도 알제는 바다를 따라 흰 건물들이 늘어선 항구도시입니다. 해수욕장의 옛 사진과 거리 사진에서는 북아프리카의 풍경과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도시 구조가 겹쳐 보입니다.

북아프리카와 세계지도에서 알제리의 위치

그림 1. 알제리의 위치. Rei-artur·Vardion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WebP 변환.

알제와 마렝고를 오가는 뫼르소의 이동과 해변·감옥·법정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표시한 개략도

그림 2. 뫼르소의 주요 동선(AI 생성 개략도). 실제 경로·축척과 다르며 해변 위치는 미상입니다. 참고: 1부 1장·6장.

지중해의 나른함

소설의 전반부에는 지중해 도시 특유의 나른한 여유가 흐릅니다. 어머니의 장례식과 직장 생활, 마리와의 연애, 레몽과의 친구 관계까지 뫼르소의 태도는 한결같습니다. 슬픔을 과장하지도 않고 사랑을 맹세하지도 않으며 출세에 특별한 욕심을 보이지도 않습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감정을 굳이 연기하지 않습니다. 카뮈의 건조하고 담담한 문체를 통해 전달되는 뫼르소의 무덤덤함은 알제의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나른한 바람처럼 느껴집니다.

카뮈가 어린 시절을 보낸 벨쿠르의 옛 리옹 거리(현재 모하메드 벨루이즈다드 거리) 사진을 보았습니다. 가로수와 발코니가 달린 공동주택, 길가의 상점들을 떠올리며 뫼르소가 발코니에 앉아 거리를 바라보는 장면을 읽으니 그의 무심한 일상이 더 구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전차 선로와 가로수, 건물이 늘어선 옛 알제 리옹 거리의 엽서

그림 3. 알제 리옹 거리의 엽서, 1917년경. Post-Scriptum에서 자유 이용 가능 자료로 소개합니다.

마렝고, 장례식의 뜨거운 길

소설 첫 장의 무대인 마렝고는 어떤 도시일까요? 지금은 하주트(Hadjout)로 불리는 곳으로, 알제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내륙 도시입니다. 오래된 엽서에는 낮은 건물과 거리의 풍경이 남아 있습니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위해 알제에서 이곳까지 버스를 타고 갑니다. 이 풍경을 보고 나니 뜨거운 햇빛 아래 장례 행렬이 길을 지나는 장면이 한층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무거운 사건조차 뫼르소에게는 슬픔이라는 추상적인 감정보다 햇빛과 더위, 피로와 졸음 같은 육체적인 감각으로 먼저 다가옵니다.

옛 마렝고의 거리 풍경

그림 4. 마렝고 엽서, 1918년 이전. P. Satragno 발행 /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

바다와 태양의 두 얼굴

알제의 옛 해수욕장 사진은 또 다른 인상을 줍니다.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고 해변 가까이에 도시가 이어지는 풍경을 떠올리면 장례식 다음 날 뫼르소가 마리와 수영하고 영화를 보러 가는 행동도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젊은이의 일상으로 보입니다. 뫼르소에게 삶은 거창한 의미보다 햇빛과 바다, 담배와 커피, 여자와 수영 같은 지금의 감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알제의 파도바니 해수욕장과 주변 시가지를 내려다본 옛 사진

그림 5. 파도바니 해수욕장과 주변 시가지(촬영 연도 미상). Collection B. Venis / Alger-roi. 붉은 원은 원본 표시이며, 소설 속 해변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해변 사진 자료: 파도바니 해수욕장 관련 역사 자료 · 알제의 역사 사진과 엽서 찾아보기

그러나 전반부에서 삶의 여유를 만들어 주던 햇빛은 해변의 살인 장면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바다는 그대로 푸르고 태양도 그대로 빛나지만 햇빛은 더 이상 나른하지 않습니다. 뜨거운 모래와 눈을 찌르는 빛, 땀과 열기가 뫼르소를 압박합니다. 결국 총성이 울립니다. 알제와 주변 해안의 풍경을 보고 나니 『이방인』에서 햇빛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뫼르소의 육체와 행동을 자극하는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한 사람을 재단하는 법정

이 사건을 기점으로 소설의 분위기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건조한 들판의 건초에 떨어진 작은 불씨처럼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그런데도 무덤덤한 뫼르소는 이를 바로잡기는커녕 흘러가는 대로 따라갑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변호하거나 사회가 원하는 모습으로 행세하지 않습니다.

20세기 초 알제 법원 건물의 외관을 담은 엽서

그림 6. 20세기 초 알제 법원 외관. V.P. Paris 제작, 게티 연구소 소장 /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 소설 속 재판 장소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후반부에서 재판을 받는 것은 살인 사건의 피고인 뫼르소이지만 정작 법정이 심판하는 것은 그의 삶 전체처럼 보입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것, 관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는 것, 커피를 마셨다는 것, 장례식 다음 날 여자와 수영하고 희극 영화를 보았다는 것이 하나씩 불려 나옵니다. 살인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행동들이 모여 뫼르소가 어떤 인간인지를 규정하는 증거가 됩니다.

성과에 목맨 듯한 검사는 이를 이용해 그를 도덕적으로 무감각한 인간으로 만들고 종교적 신념을 가진 예심판사와 사제는 신을 믿지 않는 그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기자와 방청객의 시선까지 더해지면서 재판은 한 개인의 행위를 판단하는 자리를 넘어 사회가 정한 정상의 범위를 벗어난 인간을 심판하는 자리가 됩니다.

법정에는 뫼르소의 재판에 이어 열릴 존속살해 사건에 대한 관심까지 뒤섞여 있습니다. 후텁지근한 공기 속에서 우연과 편견, 도덕적 판단이 겹겹이 쌓여 갑니다. 살인과 직접 관계없는 것들이 뫼르소라는 인간을 설명하는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고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판결로 이어집니다. 그는 사람을 죽인 죄만으로 심판받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고 슬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함께 심판받습니다.

생각해 보면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뫼르소는 달라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달라진 것은 그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입니다. 알제의 거리에서 그의 무덤덤함은 그저 한 젊은이의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법정에 들어서는 순간 같은 무덤덤함은 냉혹함이 되고 무신경함이 되고 마침내 인간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증거가 됩니다.

80년이 지난 지금

그래서 저는 뫼르소에게서 오늘날의 젊은이들을 떠올렸습니다. 성공과 출세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결혼이나 가족에 대해 이전 세대와 다른 생각을 하며 감정을 굳이 과장해서 표현하지 않는 태도 말입니다. 사회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에 “꼭 그래야 하나?”라고 반응하는 무덤덤함은 뫼르소에게서만 발견되는 낯선 태도가 아닙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도 다시 뫼르소를 바라보게 됩니다. 자식이 자기 방식대로 무던하게 살아가는 것 자체보다 두려운 것은 언젠가 그 태도가 사회가 정한 정상의 기준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오해받고 재단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세상에 맞서라고 가르치면서도 동시에 세상의 눈 밖에 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뫼르소와 같은 일이 자식에게 닥칠까 봐 전전긍긍합니다.

『이방인』이 출간된 1942년으로부터 80여 년이 지났습니다. 개인의 삶과 가치관을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도 그때보다 훨씬 강해졌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뫼르소를 심판했던 사람들과 완전히 달라졌을까요?

누군가의 행동 자체보다 그 사람의 표정과 말투를 먼저 판단하고 슬퍼해야 할 때 충분히 슬퍼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며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이유로 몇 가지 단편적인 행동을 모아 그 사람의 인격 전체를 설명하려 하지는 않나요? 법정 대신 인터넷과 SNS가 그 역할을 하고 있을 뿐 한 인간을 재단하는 일은 오히려 더 빠르고 쉬워진 것은 아닐까요?

세계지도에서 보면 알제리는 우리와 멀리 떨어진 북아프리카의 나라입니다. 소설 속 알제의 거리와 마렝고의 들판도 이제는 80여 년 전의 풍경입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뫼르소를 심판했던 사람들의 시선은 그다지 낯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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